2011년 8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진주에서 개최된 '청춘콘서트'에서 대학시절 의료봉사활동을 한 계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의료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은 사회에서 받은 혜택의 일부를 돌려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안철수 원장은 그 당시 의료봉사의 경험을 통해 '사회안정망의 중요성과 공감능력을 배우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안철수 원장이 타인의 삶에 대한 공감능력을 배웠다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우리는 어떤 형식으로든지 공동체에 속해 있을 수 밖에 없는데, 공동체의 건강한 유지 및 발전을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공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보니 최근 읽기 시작한 마사 누스바움 교수의 '공부를 넘어 교육으로'라는 책의 메시지와 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한 인문학 교육

원제는 'Not For Profit: Why Democracy Needs the Humanities' 입니다. 누스바움 교수는 민주주의와 세계시민 정신을 갖추기 위해서는 공감능력과 상호의존성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교육계에서 노력해야 하는 바는 이러한 공감능력과 상호의존성 이해를 함양시키는 인문학 교육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책에서 담고 있습니다. 

공동체의 위기는 교육의 위기에서 비롯되었으며, 교육의 개혁이 공동체의 개혁을 이끌어낸다는 것이 저의 생각인데, 민주주의의 위기는 교육의 위기임을 강조하는 누스바움 교수의 주장에 공감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비극적 전쟁 폐허에서 민주주의라는 꽃을 피워내기까지 과거 많은 분들의 투쟁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민주주의의 아름다운 가치를 잊고 있다가 표현의 자유마저 극도로 제한하는 퇴행하는 듯한 현재 한국의 상황을 목도하며 요즘에야 비로소 그 가치를 가슴으로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시간이 걸리기는 하겠지만, 민주주주의 가치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백년대계라고 하는 교육정책에서 먼저 실마리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누스바움 교수의 글에서처럼 '민주주의 체제들을 살아있게 하고 (널리 깨어있게 하는 일에, 훈련된 사유, 성찰 능력은 필수 항목'입니다. 이러한 능력을 길러주는 역할을 특히 (인문학) 교육이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대학입학을 위한 교육, 더 나아가서는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직업을 얻기 위한 교육에 매진하는 우리의 교육현실에서 사회안정망의 중요성이니 공감능력이니 하는 말들이 별로 중요한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라 충분히 생각하지만, 결국 소수의 교육 개혁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다수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독려하여 교육의 판을 새로 짜고 정책에 반영하고 실행해나가야 하겠지요.

성장 목적의 교육은 중단되어야

한편, 분배의 문제도 교육의 관점에서 풀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누스바움 교수가 주장하는 바대로 '(경제)성장을 위한 교육'은 중지되어야 합니다.  성장을 위한 교육은 그 자체로 한계가 있습니다. 'GNP 발전 패러다임'이 가진 '가장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는 성장을 위한 교육이 1인당 GNP의 상승은 가져왔지만, '이 패러다임이 분배의 문제를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50페이지 관련)

최근 워렌 버핏은 부자들은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른바 '버핏세'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몇몇 미국내 부자들은 워렌 버핏의 주장에 동의하였는데, 이들은 그 이유를 '사회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사회 구성원간 상호의존성의 이해가 사고의 바탕에 있다고 보아도 문제가 없다고 보여집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현실과 지독하게 일치하는 상황을 발견하였습니다. 

"현 시대의 발전이라는 주제 역시 경제 성장의 최고 중요성 그리고 분배 평등의 상대적 비-중요성에 대한 강조와 더불어 제시된다. 학생들이 듣게 되는 말이란, 중요한 것은 '평균적인' 사람들의 상황이라는 것이다.(이를테면 가장 못사는 이들이 어떻게 사는지가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심지어, 이질적 권리를 지닌 이질적 사람들로서가 아니라 진보하고 있는 있는, 하나의 거대한 집합의 부분으로서 자신들을 생각하라고 독려된다. (중략) 이러한 표준적 사고는 만일 국가가 잘 나가고 있다면 너 역시 현재 잘 나가고 있는 상태임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설혹 그 '너'가 현재 극빈하고, 숱한 빈곤으로부터 고통받고 있다 할지라도 말이다. 이 표준적 사고는 의무적인 국가시험들에서 학생들이 암기하고, 이해없이 반복 학습해야만 하는 하나의 사실로 제시된다." (53페이지 관련)

이것이 (경제)성장을 위한 교육의 패러다임이 버려져야 하는 심각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노암 촘스키는 이른바 '지식인'의 역활은 '대중이 생각을 멈추게 하는 것'이라고 섬뜩한 주장을 하는데, 누스바움 교수가 말하는 경제 성장을 위한 교육의 옹호자들이야말로 노암 촘스키가 언급한 지식인의 전형이라 보여집니다. 그 옹호자들은 '도덕적 둔감성이야말로 불평등을 무시하는 경제발전 프로그램을 수행하는데 필수적'이라 여깁니다. 이를 위해 요구되는 것이 '인문, 교양, 예술 교육'의 중단시키는 것이지요. 

여전히 우리 사회가 (경제)성장을 위한 교육의 패러다임이 유효하게 작용하는 이유는 (다시 민주주의로 돌아와 언급하자면) 우리나라가 아직도 온전히 '민주주의가 번영한 체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순수한 모델로서의 경제 성장을 위한 교육 모델은 민주주의가 번영한 체제에서는 찾기 어렵다. 민주주의 체제는 모든 개인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세워지는 것인데, 성장모델은 오로지 어떤 군집체만을 존중하니 말이다. 하지만 전 세계의 교육 시스템들은 이 성장 모델이 민주주의의 목표에 얼마나 부적합한지에 대한 숙고없이 점점 더 이 모델에 가까워지고 있다" (56페이지 관련)


책 속에서

역사는 이제 도덕적이고 온전한 인간이 점점 더 부지불식간에 상업적이고 협소한 목적을 지닌 인간에게 자리를 내주고 마는 단계에 당도했다. 과학의 경이로운 진보에 도움을 받은 이 과정은 거대한 영역에 걸쳐 권력을 차지해가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도덕적 균형 감각을 뒤흔들며, 영혼없는 조직체의 그늘 아래서 인간적 면모를 가리고 있다. -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민족주의' 1979

이제 인간의 성취란 잘 만들어진 기계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잘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제 교육의 주된 결실인, 풍요로운 의미로 충만한 삶의 성취는 무가치한 것으로 폐기되고 있다. - 존듀이, '민주주의와 교육' 1915

누스바움은 위대한 교육자와 국가창건자들은 모두, 예술과 인문학이 어떤 식으로 (맹목적 전통과 권위의 힘에 맞서는 지적 저항과 독립적 행동에 필수적인 능력인) 아이들의 비판적 사색 능력을 길러줄 수 있는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예술과 문학을 배우는 학생들은 또한 타인의 상황을 상상하는 법을 배우는 바, 그 상상력은 민주주의의 성공에 근본적으로 필요한 능력이요, 이 상상력 훈련은 '내면의 시선'을 기르는데 필요한 훈련이기도 하다.
(16페이지)

그녀는 우리더러 루소처럼 생각하자고 제안한다. (그의) 에밀이 인간의 평범한 곤경에 공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루소처럼 말이다. 에밀은 수많은 약자가 처한 상황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세계를 보고 풍요로운 상상력을 함양해야만 한다. 오직 그러해야만 참으로 타인을, 실재하는 동등한 이로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오직 그러할 때 그는 동등한 이들 속에 (동등하게) 있는 이, [사람 간의] 상호 의존성을 이해하는 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민주주의와 세계 시민정신 globalcitizenship에 필요한 것이다. 공감 능력이 부족한 시민들로 가득찬 민주주의 체제는 어쩔 수 없이 사회적 소외와 낙인의 체제를 양산할 것이며, 그리하여 그 체제의 문제들을 해결하기는 커녕 악화시킬 것이다.  (17페이지) 

<< 민주주의는 존경과 관심에 기초해서 세워지는 것이며, 존경과 관심은 반대로 다른 사람들을 단순히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존재자로서 인식할 줄 아는 능력에 기초해서 세워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30페이지)

이러한 능력들은 인문교양과 예술에 관련되어 있다.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 지역적 차원을 뛰어넘어 '세계시민'으로서 세계의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의 곤경에 공감하는 태도로 상상할 수 있는 능력. (31페이지)
 
...교육이란 단지 사실과 문화적 전통에 대한 수동적 흡수에 관한 것이 아니며, 정신 활동의 능력을 배가할 수 있도록, 복잡다기한 세계에서 사려깊게 비판적, 비평적일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47페이지) 

"훌륭한 교육은 ... 상투적 사고를 분쇄하는 동시에,  깊은 공감과 상호 호혜의 중요성에 대한 감각을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다." (78페이지)

 
참고로 검색하다 발견하게 된 건데, The Guardian지의 인터뷰를 보니 마사 누스바움 교수(Martha C. Nussbaum)는 업적에 이름을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싫어한다고 하는데, 세계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인터뷰 내내 소탈하고 겸손한 면모가 돋보이네요.

이 책을 읽어보셔도 아시겠지만, 글 자체가 어렵지 않고 누가 읽어도 이해할 만큼 평이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뻔한 내용이 될 수도 있겠지만 예술 및 인문학 교육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시카고 대학의 교수이며 현대 정치철학과 법철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석학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 분의 다른 저서도 찾아서 읽어보려 했더니 우리나라에 번역된 서적이 이 책 밖에 없네요.

Amazon.com에서 검색한 미국내에 나온 저서를 몇 가지 소개합니다.

- Creating Capabilities: The Human Development Approach(2011)
- Upheavals of Thought: The Intelligence of Emotions (2003)
- Poetic Justice: The Literary Imagination and Public Life (1997)
- Love's Knowledge: Essays on Philosophy and Literature(1992)
- Frontiers of Justice: Disability, Nationality, Species Membership (2007)
- Hiding from Humanity: Disgust, Shame, and the Law 2006
- From Disgust to Humanity: Sexual Orientation and Constitutional Law (Inalienable Rights) (2010)
- Women and Human Development: The Capabilities Approach (The Seeley Lectures) 2001
- Cultivating Humanity: A Classical Defense of Reform in Liberal Education (1998)
- Sex and Social Justice (2000)
- The Fragility of Goodness: Luck and Ethics in Greek Tragedy and Philosophy (2001)
- The Clash Within: Democracy, Religious Violence, and India's Future (2009)
- The Therapy of Desire: Theory and Practice in Hellenistic Ethics (2009)
- Sexual Orientation and Human Rights in American Religious Discourse (1998)
- Essays on Aristotle's De Anima (Clarendon Aristotle Series Cas) (1995)
- Animal Rights: Current Debates and New Directions (2005)
- The Therapy of Desire (1996)
- The Sleep of Reason: Erotic Experience and Sexual Ethics in Ancient Greece and Rome (2002)
- On "Nineteen Eighty-Four": Orwell and Our Future (2005)
- Sex, Preference, and Family: Essays on Law and Nature (1998)
- Clones and Clones: Facts and Fantasies About Human Cloning (1999)
- For Love of Country? (2002)

Posted by emotion_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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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철수, 김영사/2004년

CEO안철수,지금우리에게필요한것은
카테고리 시/에세이 > 인물/자전적에세이 > 기업가
지은이 안철수 (김영사,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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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큰 문제가 무엇일까를 묻는다면, 그것은 원칙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원칙과 상식이 지켜진다면, 우리사회는 훨씬 투명하고 살맛이 날텐데 말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는 원칙을 지키는 것을 바보취급 받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해하지 못할 비정상적인 현상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어두운 현실이다. 그래서일까. 저자와 같은 원칙주의자의 승리가 더욱 값져보인다. 
 
이 책은 안철수씨의 에세이집이다. 다양한 소재를 바탕으로 쓴 평소의 글들을 모아냈다. 자신에 대한 스토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개인적인 이야기만 담은 것은 아니고, 기업을 경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IT기업을 비롯한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한국의 미래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제언하고 있다. 

이 책에서 돋보이는 것은 자기 삶에 대한 해석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어느날 문득 자신의 삶을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오랜 성찰과 사유에서 나온 깨달음이다.

"대학을 다니면서 했던 고민은 전공이 적성에 맞고 안 맞고 그런 게 아니었다. 내가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사회를 살아가는 한 일원으로서 일방적으로 혜택을 받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받은 일부라도 돌려주고 싶었다."(17페이지)

생각없이 살아가는 것은 곧 인생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
'삶의 철학'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철학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저자와 같은 자신만의 분명한 철학은 깊은 고민을 거치고 노력할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젊은 날의 발전적인 고민은 필수적인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앞에서 언급했던 몇 가지 주제들에 대한 안철수 씨의 소신은 과연 어떠한가 살펴볼 수 있는데, 과연 힘이 느껴진다. 세상에 들을만한 가치가 있는 목소리를 낼 만큼 영향력을 갖춘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의사라는 보장된 길을 포기한 것은 비원칙적이고 비상식적이었지만,
그의 생각을 깊이 들여다보면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는 진정한 원칙주의자였고, 상식주의자였던 것 같다.
그런 점이 그의 삶을 이끌어가고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열광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나는 원칙과 상식을 지키기보다 적당히 타협하며 인생을 너무 복잡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에 미치게끔 된다.
진정한 인생의 승리와 완성을 위해서 어떤 면에서는 단호함이 필요하지는 않은지...
Posted by emotion_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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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안철수 (김영사,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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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입 후 약 절반정도 읽었네요.
평소 관심도 있었지만,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을 때 상당히 반듯한(?) 사고방식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변칙이 횡행하는 요즈음 올바른 리더, 존경할만한 CEO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읽어볼만한 책인데, 다 읽고 서평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Posted by emotion_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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